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서간도(西間島) 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신민회(新民會)에 의하여 구체화되었으니, 이들은 1910년을 전후하여 중국 만주지역에 한민족을 집단적으로 이주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말 평안도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한 이건영은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 당하자 신민회의 계획에 따라 가문의 장형(長兄)으로서 동생인 이석영(李石榮)·이철영(李哲榮)·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이호영(李頀榮) 등과 함께 독립군 기지개척을 목적으로 일가 권속을 이끌고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추가가(鄒家街)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학사(耕學社),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등 설립을 지원하였다.
또한 서당을 경영하며 동포자제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그후 봉천(奉天) 보안보(保安堡) 서탑대가(西塔大街)에 거주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友堂李會榮略傳(李丁奎. 李觀稙, 1985) 43面
- 이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鄭華岩, 1982) 141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社會問題資料硏究會編) 第3輯 180·181面
- 滿洲韓人民族運動史硏究(박환, 1991) 280·324面
- 倭政時代人物史料(作成年度 未詳) 第6卷 183面
- 한국독립운동사연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第3輯 62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