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12.31 경기도 이천 (利川) 에서 김하락 (金河洛) 민승천 (閔承天) 등이 이천창의소 (利川倡義所) 를 결성하자 참진 (參陣) 하여 종사관 (從事官) 으로서 남한산성 (南漢山城) 공략 (攻略) 에 참가하였으며 남한산성 (南漢山城) 이 경 (京) ·일군 (日軍) 에 함락된 후 의진 (義陣) 이 남하 (南下) 하여 1896. 6. 15. 경북 (慶北) 의성 (義城) 을 거쳐 경주에서 그 지역 의병장들과 합세 (合勢) , 경주연합의진 (慶州聯合義陣) 을 결성할 때 좌익장 (左翼將) 에 선임되어 동년 7. 13. 경북 (慶北) 영덕전투 (盈德戰鬪) 에서 패하여 김하락 (金河洛) 이 자결순국하기까지 초기의병 (初期義兵) 으로 대소전투에 간부 (幹部) 로서 참전 (參戰)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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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다.
1895년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김하락(金河洛)·민승천(閔承天) 등이 이천창의소를 설치하여 의병을 일으켰을 때 이에 참가하였다. 이천 의병들이 남한산성으로 이동할 때 종사관(從事官)으로 임명되어 남한산성 공방전에 참가하였다.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영남지방으로 이동하여 경북 의성(義城)을 거쳐 경주(慶州)에 이르렀다. 경주에서는 현지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새 의진(義陣)의 좌익장(左翼將)으로 선임되었다.
1896년 7월 13일 경북 영덕(盈德)에서 의병장 김하락이 투신 순국하게 되자, 마침내 의진을 해산하였다. 의병 해산후 경기도 광주로 귀향하여 의병 동지 구연영(具然英)과 더불어 구국회(救國會)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의병항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894. 11. 10) 109면
- 운봉문화(이천문화원, 1990. 5. 15) 제3호 39·40면
- 운봉문화(이천문화원, 1990. 12. 10) 제4호 1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2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586·589·6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