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경흥(慶興) 사람이다.
만주 간도성(間島省) 연길현(延吉縣) 지신촌(智新村) 명동둔(明東屯)에서 출생하여 1935년 4월 만주에 있는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로부터 민족의식을 계몽받고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김 구(金九)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에 특설한 한인특별반(韓人特別班)에 입학하여 군사훈련교육을 받는 한편, 「신민(新民)」 발행에 관여하였다. 그 후 1935년 11월 중국 제남지구(濟南地區)의 독립운동가 이웅 일파에게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3월 제남영사관 경찰부에 붙잡혀 강제 귀국당한 뒤 동년 6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 등의 혐의로 본적지인 함북 웅기경찰서(雄基警察署)에 구금되어 취조를 받은 뒤 8월 말경 석방되었다.
그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간 그는 간도성에 소재한 국민고등학교(國民高等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38년 4월 외사촌 동생인 윤동주(尹東柱)와 함께 서울 연희전문학교(延喜專門學校) 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그는 일제의 민족동화정책은 한국어를 폐지하고 일본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한국 고유의 문화와 한민족을 말살시키는 데 있으므로 민족문화의 유지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라 1939년 2월 동급생 윤동주·백인준(白仁俊)·강처중(姜處重) 등과 더불어 동교 기숙사에서 수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한국문학 동인잡지의 간행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문학작품 품평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 앙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2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 독립을 위한 민족문화 연구는 고도의 한국문학을 연구하여 민족 특성을 발견·창달하는데 있다고 판단하여 그 해 4월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여 세계사와 문학 연구 등을 통한 민족문화 유지에 노력하였다. 또한 동년 10월경부터 1943년 7월까지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의 윤동주와 제3고등학교생 고희욱(高熙旭) 등과 더불어 경도 시내에서 자주 모임을 갖고 민족정신을 작흥시킬 수 있는 학문적 연구에 힘쓰다가 1943년 7월 14일 붙잡혔다.
1944년 4월 13일 경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3월 7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사상휘보(고등법원검사국사상부, 1936. 6월) 제7호 3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89면
- 비문(1945. 5. 20 건립, 만주 용정)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편) 제5권 114∼118·675∼677면
- 윤동주평전(송우혜, 1988) 122∼134·320∼32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215∼217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사상월보(사법성, 1944. 4∼6월)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