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독립만세 시위 운동 (獨立萬歲示威運動) 이 일어난 직후 (直後) 김례진 (金禮鎭) 김송혁 (金淞爀) 등과 함께 항일구국단 (抗日救國團) 을 조직 (組織) 하여 거사 (擧事) 에 필요 (必要) 한 권총 (拳銃) 과 폭탄 (爆彈) 등을 입수 (入手) 하고 일 기관 (日機關) 의 파괴 공작 (破壞工作) 을 추진 (推進) 하다가 1920.8월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여행열 (呂行烈) 이 주도 (主導) 하는 평북도청 (平北道廳) 평양경찰서 (平壤警察署) 평양부청 (平壤府廳) 등의 폭탄 투탄시 (爆彈投彈時) 자가 (自家) 에 교통지국 (交通支局) 을 설치 (設置) 하고 활동 (活動) 하다가 피체 (被逮) 되었으며 1년3월간 (月間)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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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9년 5월경, 홍석운(洪錫雲)·이기영(李起榮)·김례진(金禮鎭)·김송혁(金淞爀)·문 빈(文斌)·이춘삼(李春三)·한성로(韓聖魯) 등과 함께 항일구국단(抗日救國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에는 중국 동삼성(東三省)에서 표영준(表永俊)·유성삼(劉成三) 등으로부터 권총을 반입하고, 주석환(朱錫煥)·김상만(金相萬) 등으로부터는 폭탄을 입수하여 일제 주요기관 등에 대한 파괴공작을 추진하였다.
1920년 8월에는 김예진·장혜근(張惠根)·장인중(張麟中) 등 1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한족회(韓族會)·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의용단(義勇團) 등이 연합하여 조직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발령한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배포하였다. 또한 자기 집에 교통지국(交通支局)을 설치, 일제 주요통치기관 파괴공작을 추진하여, 평안남도 경찰부 제3부·평양경찰서·평양부청(平壤府廳)등을 목표로 삼았으나, 부청과 경찰서는 실패하고 평남 경찰부 제3부청사에다 폭탄을 투척한 뒤 귀환하다가, 평양 칠성문(七星門) 밖에서 경계중이던 일경에게 저격을 가하여 부상시킨 바 있다. 그후 일경에게 붙잡혔으나 재판결과는 알 수 없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46∼4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0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468·4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