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황정수는 1919년 3월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신녕보통학교(新寧普通學校) 학생이었다. 그는 3월말부터 김호용(金浩溶)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26일 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교사 박필환(朴弼煥)의 권유를 받아 본격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4월 6일 신녕면 완전동(莞田洞) 노영수(盧永秀)의 집에 모여 황정수가 갖고 있던 종이로 만든 구한국 깃발을 나무에 걸어놓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밤에는 조율이(曺葎伊)와 함께 주민들을 집합시켜 매양동(梅陽洞)에서 가두 만세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신녕경찰관주재소(新寧警察官駐在所) 경찰은 급히 이를 해산시키고 체포하였다.
황정수도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1919. 5. 10)
- 고등경찰요사(경상북도 경찰부, 1934) 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