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10월 대판 (大阪) 조선노동조합 (朝鮮勞動組合) 에 가입 (加入) 하여 활동 (活動) 하면서 신간회대판지회 (新幹會大阪支會) 를 조직 (組織) 설치 (設置) 하였으며 황보윤 (皇甫潤) 송웅갑 (宋雄甲) 이운금 (李雲金) 과 함께 교포 (僑胞) 를 규합 (糾合) 하여 조선 독립 (朝鮮獨立) 을 목적 (目的) 으로 하는 천주 (泉州) 일반노동조합 (一般勞動組合) 을 결성 (結成) 하고 동지 (同志) 윤봉관 (尹鳳官) 등에게 노동학원 (勞動學院) 을 설치 (設置) 케 하여 「조선역사 (朝鮮歷史) 」「인도독립운동사 (印度獨立運動史) 」등을 해설 (解說) 하여 청소년 (靑少年) 에게 민족정신 (民族精神) 을 심어주는 등 3년6월간 (月間)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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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기도 용인(龍仁) 사람이다.1925년 무렵, 재일한인 노동단체로 조직된 대판조선노동조합(大阪朝鮮勞動組合)을 어 파(魚波)·송장복(宋章福)·지건홍(池建弘) 등과 함께 주도, 한인노동자의 권리옹호와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고, 1927년 12월에는 김수현(金守顯)·신재용(辛載鎔) 등과 함께 신간회(新幹會) 대판지회(大阪支會)의 중심 간부들인 황보 윤(皇甫潤)·송웅갑(宋雄甲)·이운금(李雲金) 등과 함께 재일 한인을 규합하여 천주일반노동조합(泉州一般勞動組合)을 결성, 조합운동의 진정한 목적이 한국독립에 있고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은 이러한 활동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하에서 조직의 확대를 도모하고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하였다.1931년 4월에 들어서는 일본 노동조합 총평의회(總評議會) 지시를 선언하고, 이어 조합활동을 포기하며 기독교 단체에 관계하면서 신간회 계지회 이래 민족운동의 노선을 견지해 왔다.이와 같이 노동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1935년 10월초 일경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된 채 출옥하였으나 3년만인 1938년 3월 19일 서거하고 말았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665·66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715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56·15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53·144·1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