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1.1 전남 (全南) 함평군 (咸平郡) 신광면 (新光面) 에서 거의 (擧義) 한 심남일 의병진 (沈南一義兵陣) 의 후군장 (後軍將) 으로 600여명 (餘名) 의 의병 (義兵) 과 함께 남평 (南平) 강진 (康津) 능주 (綾州) 해남 (海南) 보성 (寶城) 영암 (靈岩) 나주 (羅州) 등지 (地) 에서 왜군 (倭軍) 과 전투 (戰鬪) 하였으며 1909.7.21 의병해산 (義兵解散) 조칙 (詔勅) 으로 심남일 의병장 (沈南一義兵將) 이 의병 (義兵) 을 해산 (解散) 시키자 전북 (全北) 정읍군 (井邑郡) 으로 피신 (避身) 1년8월여간 (月餘間)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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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擧義) : 의병을 일으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전북 순창(淳昌) 사람이다.
1907년 11월 1일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서 심남일(沈南一)이 기의(起義)하자 이에 참전하여 후군장(後軍將)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6백여명의 군세로 남평(南平)·강진(康津)·능주(陵州)·해남(海南)·보성(寶城)·장흥(長興)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일군(日軍)과 교전하였다.
특기할 일로는 석호산(石虎山)에서 안규홍(安圭洪) 의병장과 만나 협동작전을 논의한 사실이 있으며 1909년 7월 21일 전남 영암군 금마면 고인동에서 서울의 의병해산의 조칙(詔勅)에 따라 의병을 해산할 때 정읍군으로 피신 일년간에 걸쳐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603∼6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565·566·568·573·5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