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연희전문학교 (延禧專門學校) 학생 시절 (學生時節) 부터 항일 민족 정신 (抗日民族精神) 을 시 (詩) 로써 발표 (發表) 하기 시작 (始作) 하였으며 1942년 경도 동지사대학 (京都同志社大學) 에 재학중 (在學中) 동지 (同志) 인 송몽규 (宋夢奎) , 장성언 (張聖彦) 등과 징병제 반대 (徵兵制反對) 와 무력 봉기 (武力蜂起) 및 민족적 (民族的) 문학관 (文學觀) 을 강조 (强調) 하고 민족성 (民族性) 의 향상 (向上) 과 대중문화 앙양 (大衆文化昻揚) 및 민족의식 (民族意識) 유발 (誘發) 에 전념 (專念) 하다 일경 (日警) 에게 피체 (被逮) 되어 경도지방재판소 (京都地方裁判所) 에서 징역2년을 받고 옥고 (獄苦) 중 옥사 (獄死)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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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함북 청진(淸津) 사람이다.
1936년 중국 동삼성(東三省) 소재 민족학교인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졸업한 후 광명중학교(光明中學校)에 진학하여 시(詩)작품을 통한 항일민족정신의 기초를 닦았다.
1938년 그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진학한 후 송몽규(宋夢奎) 등과 함께 민족정신과 조국의 독립에 대하여 토론하였으며 <서시(序詩)>·<별헤는 밤>·<무서운 시간>·<또다른 고향> 등 많은 항일민족시를 발표하면서 우리 민족의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1942년 경도(京都)에 있는 동지사(同志社)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후 동지인 송몽규·장성언(張聖彦) 등과 만나 일제의 강제적인 징병제를 반대하며 저항정신을 담은 시작품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한편 민족적 문학관을 확립하는데 힘썼으며 민족문화의 앙양 및 민족의식의 유발에 전념하던 중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44년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尹東柱評傳(宋友惠)
- 判決文(1944. 3. 31 京都地方裁判所)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351·493·511·1178·1185∼118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