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504
성명
한자 高大先
이명 高大善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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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19.4.9 양양군(襄陽郡) 현북면(縣北面) 하광정리(下光丁里) 면사무소(面事務所) 주변(周邊) 광장(廣場)에 모인 1,000여군중(餘群衆)과 함께 독립만세(獨立萬歲)고창(高唱)하고 기사문리(其士門里)에 있는 경찰 주재소(警察駐在所)로 몰려가던 중 주재소(駐在所) 옆개울 언덕에 엎드려 있던 왜군(倭軍)왜경(倭警)들이 발사(發射)총탄(銃彈)에 맞아 현장(現場)에서 순국당(殉國當)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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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양양군 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현북면(縣北面)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석했던 그는 어성전리(漁城田里) 출신이었다. 1919년 4월 9일 현북면민들은 독자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본래의 계획은 박원병(朴元秉)이 독립선언서를 많이 제작하기로 하고 마을마다 태극기를 만들어 양양 장날인 4월 9일 양양읍에 가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원병이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가 일제 관헌에게 발각되어 읍으로 가는 것이 저지됨에 따라 관할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변경하였다. 그는 하광정리(下光丁里) 면사무소 주변 광장에 모인 1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기사문리(其士門里) 에 있는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에서는 미리 정보를 입수하여 전날 지원부대가 도착해 있었고 일제군경은 주재소 옆 개울 언덕에서 군중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엎드려 있었다. 1천여군중은 주재소로 향하면서 독립만세를 일제히 불렀고 일제군경이 마구 쏘아댄 총탄에 맞아 그를 비롯한 전원거(全元擧)·임병익(林秉翼)·홍필삼(洪必三) 등 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의 운동을 '기사문 운동'이라 부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26面
  • 鄕土誌(襄陽文化院, 1976) 105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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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고대선 고대선(高大善) 강원도 양양(襄陽) 양양면 3.1운동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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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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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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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양양 3·1운동 기념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2 사당 충렬사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3 비석 양양 3·1만세운동 유적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4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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