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희천(熙川) 사람이다.
만주지역에서 독립군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심용준은 3·1운동 발발 다음 해인 1920년 최시흥(崔時興), 최지풍(崔志豊) 등과 함께 평북 천마산중에서 무장항일결사 천마산대(天摩山隊)를 조직하여 일제의 행정기관을 파괴하고, 일경과 부일배를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23년 6월 3일에는 천마산대 대표로서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에 서명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 서간도(西間島)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여 양세봉, 문학빈(文學斌) 등과 함께 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대한통의부에서 참의부(參議府)가 새로이 독립한 후 1925년 진동도독부(鎭東都督府)가 조직되면서 제2사령장(司令長)으로 통의부와의 재결합을 시도하였으며, 참의부로 다시 개명된 1926년에는 참의부 제3중대장으로 참의장 윤세용(尹世茸), 사령장 박응백(朴應伯)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정의부(正義府) 대표 현익철(玄益哲), 신민부(新民府) 대표 송상하(宋尙夏) 등과 함께 참의부 대표로서 국민부(國民府) 결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통합회의가 실패한 후, 같은 해 12월 신민부 군정파(軍政派), 정의부 탈퇴인사, 참의부 주류세력들이 혁신의회(革新議會)와 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를 조직하자 그가 주도하는 참의부의 일부 세력은 정의부 및 신민부 민정파(民政派) 등과 1929년 3월부터 새로운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3부의 통합을 결의하고 1929년 4월 1일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의 해체를 선언하였고, 국민부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였다. 국민부는 군정부나 유일당의 결성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의 주도로 조직된 것이었다.
국민부에서는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을 결정하였는데, 이때 심용준은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편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29년 12월에 창당된 이 정당은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이 발전하여 이룩된 것이다. 조선혁명당의 기본 임무는 민족적 대당을 형성하여 혁명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당면 과업은 국민부와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지도 육성하는 일이었다. 조선혁명당은 조선혁명군을 조직하고, 혁명수행의 새로운 기반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33년 4월 25일 환인현(桓仁縣) 북전자(北甸子)의 산속에서 개최된 국민부 장교회의에서 제3중대장으로 무송현(撫松縣)에서 활동하도록 결정되어 부하 40여명을 거느리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217面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179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304面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128·131·146·147·149面
- 1920年 3月 1日 天摩隊成立紀念 懷中時計(獨立紀念館 寄贈)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31·279·280·294·482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8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0輯 450· 468· 469·618·650∼652面
- 東亞日報(1925. 5. 6)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23·127·128面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國會圖書館) 323·324面
- 한국독립운동사연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第1輯 396·403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462·472·48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