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7.5 충북 (忠北) 제천 (堤川) 에서 이강년 (李康秊) 의병장 (義兵將) 이 재거의 (再擧義) 하자 참진 (參陣) ,좌종사부 (坐從事部) 에 소속되어 1908.6.4 이강년 (李康秊) 의병장 (義兵將) 이 피체 (被逮) 될 때까지 1년여간 (年餘間) 충청 (忠淸) , 강원 (江原) , 경상도 (慶尙道) 일대에서 일군 (日軍) 과 격전 (激戰) 을 벌이며 활동하였으며 그후 1921. 2월~1922. 4월 신봉직 (申奉稙) , 이응수 (李應洙) 등과 함께 경상남북도 (慶尙南北道) 의 애국지사 (愛國志士) 들을 규합 의용단 (義勇團) 을 조직하고 경북지역 (慶北地域) 담당 재무총장 (財務總長) 을 맡아 군자금 모집과 동지규합 에 힘쓰다가 피체 (被逮) 되었으나 증거 (證據) 부충분 (不充分) 으로 면소 (免訴) 되는 등의 활동 (活動)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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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07년 7월 5일 충북 제천(堤川)에서 이강년(李康秊) 의병장이 재차 거의(擧義)하자 참진,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되어 1908년 6월 4일 이강년 의병장이 붙잡힐 때까지 1년여 간 충청(忠淸), 강원(江原), 경상도(慶尙道)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21년 2월에서 1922년 4월에 이르기까지 당시 경상남북도를 중심으로 비밀결사 의용단(義勇團)을 조직하였고, 이응수(李應洙)·김찬규(金燦奎)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경북지역 담당 재무총장(財務總長)을 맡아 독립자금 2만 원 모집 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동지들의 규합에도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서(1923. 9. 30 대구지방법원)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6권 933∼9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303·730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08·209면
- 운강선생창의일록
- 동아일보(1922. 12. 20, 12. 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