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453
성명
한자 金英柱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1995 훈격 대통령표창
1941년 후 일본(日本) 동경(東京)에서 평소에 느끼고 품고 있던 한국민족(韓國民族)에 대한 차별대우에 분노가 겹쳐 더욱 민족적 의식을 고양(高揚)하고 모든 고난(苦難)을 극복하여 민족(民族)독립 발전(獨立發展)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우(學友)강철규(姜哲奎), 나기욱(羅基郁), 엄호영(嚴昊永), 노병예(盧炳禮) 등과 같이 비밀리에 자주 회합하는 등의 활동(活動)을 하다 피체(被逮)되어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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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40년경 일본 동경(東京)에서 전쟁·노동·여성문제 등에 관한 문헌을 탐독하면서부터 일제의 한민족차별정책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그는 민족의 독립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동지를 규합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이에 따라 1940년 11월경부터 비밀리에 학우인 강철규(姜哲奎)·나기욱(羅基郁)·엄호영(嚴昊永)·노병례(盧炳禮) 등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그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의를 얻었다. 이후 그들과 함께 자주 회합을 갖고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일본인 내부가 경제적·사상적으로 동요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독립운동 전개의 최적기로 이용할 것,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민족차별은 피압박민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 동지들 상호간에 목적 완수를 위해 단결을 강화하고 희생적 정신으로 투쟁할 것' 등을 계획하다가 1942년 4월 1일 붙잡힌 후 1942년 8월 7일 송치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7권 304·3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36·1337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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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영주 - 경상남도 고성(固城)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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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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