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40년경 일본 동경(東京)에서 전쟁·노동·여성문제 등에 관한 문헌을 탐독하면서부터 일제의 한민족차별정책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그는 민족의 독립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동지를 규합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이에 따라 1940년 11월경부터 비밀리에 학우인 강철규(姜哲奎)·나기욱(羅基郁)·엄호영(嚴昊永)·노병례(盧炳禮) 등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그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의를 얻었다. 이후 그들과 함께 자주 회합을 갖고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일본인 내부가 경제적·사상적으로 동요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독립운동 전개의 최적기로 이용할 것,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민족차별은 피압박민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 동지들 상호간에 목적 완수를 위해 단결을 강화하고 희생적 정신으로 투쟁할 것' 등을 계획하다가 1942년 4월 1일 붙잡힌 후 1942년 8월 7일 송치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7권 304·3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36·13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