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함북 회령(會寧) 사람이다.
1919년 간도(間島)에서 임국정(林國禎)·한상호(韓相浩) 등과 함께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참여하여 협력 일치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국자가(局子街) 이남지방에서 결사대 활동을 위한 대원모집에 힘썼다.
동년 동지인 서성권(徐成權)·김정(金精)·강백규(姜伯奎)·강상모(姜尙模)·김강(金剛) 등과 함께 청년회(靑年會)를 조직하여 일제기관 및 일본회사 등에 취직한 교포들에게 동맹 사직하고 항일운동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1919년 9월 노령에서 김하석(金河錫)의 지령을 받고 간도로 와서 윤준희(尹俊熙)·이호반(李豪班)·배구학(裵九鶴)·정기선(鄭基善)과 함께 군자금 모집에 관하여 숙의하다가 동년 12월 하순경 함복 회령에서 길림성(吉林省) 용정촌(龍井村)으로 현금 15만원이 수송될 것이라는 정보를 당시 용정촌 조선은행 출장소원인 전홍섭(全洪燮)으로부터 입수하여 현금수송차를 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1월 4일 임국정·윤국회·김준(金俊)·한상호·박웅세(朴雄世) 등과 함께 권총과 철봉 등으로 무장하고 수송차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1명과 한국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현금 15만원을 탈취하여 노령 해삼위(海蔘威)로 가져가 무기 구입과 무관학교 설립 등을 계획하였다. 동년 1월 31일경 해삼위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으나 탈주에 성공하였다.
그후 국내에 잠입하여 동지들의 구출에 힘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1년 가을 노령 연해주(沿海州) 이만에서 대한군비단(大韓軍備團)·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신민단(新民團)·광복단(光復團)·구국단(救國團)을 통합하여 적기단(赤旗團)을 조직하고, 단장 겸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삼차구(三岔口)·밀산(密山)·영안(寧安)·액목(額穆)·장백(長白)·돈화(敦化)·연길(延吉)·호림(虎林) 등지에 지부를 설치하는 한편 군사행동을 위하여 단원의 무장을 촉진하였으며, 국내외에 걸쳐 독립운동의 선전사업에 주력하였다.
1926년 4월 30일 단장 이하 최고간부들의 협의에 따라 적기단의 명칭을 혁신단(革新團)으로 개칭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統治史料(韓國史料硏究所) 第8輯 190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3卷 5·110·301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557面
- 騎驢隨筆(國史編纂委員會) 307·308面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6卷 197面
- 朝鮮問題資料叢書(亞細亞問題硏究所) 第6卷 30·3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1輯 622∼634·636·639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2卷 899·1080·1081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131面
- 大陸의 憤怒(金弘壹) 15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7卷 297·298面
- 東亞日報(1926.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