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호(連呼) : 계속하여 부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강원도 홍천(洪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홍천군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민씨 문중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태극기 2,000여매를 만들어 이날 속초리(束草里)에 있는 면사무소 앞에 모인 1,00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배부하고 면사무소 국기게양대에 손수 태극기를 올린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홍천읍내로 행진하려다가 동면장인 민병선(閔丙善)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튿날 다시 모이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3일 면사무소 앞에 다시 모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군 헌병의 습격을 받아 비로소 민병선에게 속았음을 알고 격투를 벌이다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그는 피신하였다. 그는 이날 밤 홍천군 내촌면(乃村面주) 도관리(道寬里)에서 김덕원(金德元)과 같이 산봉우리 8군데에 봉화를 올리고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후 김덕원의 사촌동생 집에 피신해 있다가 붙잡혀 소위 보안법 위반 및 방화, 기물파손 등으로 춘천형무소(春川刑務所)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1920년 8월 8일 국내에서는 더 이상 독립운동이 불가능하다가 판단하여 전답을 정리하고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인 민필호(閔弼鎬)와 함께 활동하였다.
1926년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병을 얻어 귀향 길에 올라 통천(通川)까지 왔으나 병이 악화되어 거동을 못하게 되자 들것으로 해서 14일만에 집에 도착했으나 이틀후인 6월 28일 42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3·1운동비사(이병헌) 949면
- 홍천군지(홍천군지편찬위원회, 1989. 12. 28) 247·24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568∼570·573·574면
- 강원일보(1990. 3. 1)
- 태백항일사(조동걸, 1977. 5. 1) 128∼130·133면
-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강원도 지부, 1991. 8. 15) (1) 147·374·3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