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縣北面 漁城田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군 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던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9일 현북면민들은 독자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본래의 게획은 박원병(朴元秉)이 독립선언서를 많이 제작하기로 하고 마을마다 태극기를 만들어 양양 장날인 이날을 기하여 독립선언서가 일제 관헌에게 발각되어 읍으로 가는 것이 저지됨에 따라 관할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변경하였다.
그는 하광정리(下光丁里) 소재의 면사무소 주변 광장에 모인 1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기사문리(其士門里)에 있는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한편 주재소에서는 미리 정보를 입수하여 전날 지원부대가 도착해 있었고 일군경은 주재소 옆 개울 언덕에서 군중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매복해 있었다. 1천여 군중은 주재소를 향하면서 독립만세를 일제히 불렀고 일군경이 마구 쏘아댄 총탄에 맞아 그를 비롯한 전원거(全元擧)·임병익(林秉翼)·홍필삼(洪必三) 등 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의 운동을 '기사문 운동'이라 부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鄕土誌(襄陽文化院, 1976) 10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23∼62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