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청룡면(靑龍面)에서 태어났다.
1895년 10월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만행이 일어나자 김하락(金河洛)이 경기도에서도 의병을 일으켰는데 김봉학은 그 휘하의 제2대 십장으로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후 군대에 입대하여 평양진위대에서 근무하다가 뒤에 부대가 서울로 불려 올라오자 시위대 제3대대 2중대 3소대의 상등병(上等兵)으로 서울에 주둔하고 있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해서 국권을 침탈하고 이에 항거하던 민영환(閔泳煥) 조병세(趙秉世) 등이 〈자결〉로써 이에 항의하니 김봉학은 흐느껴 울면서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던 신하로서 순국함은 당연하다. 나 또한 군인으로서 6년이나 지내면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원수의 일제무리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하였다. 김봉학은 동지들과 함께 한국침략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이 누설되어 실패하게 되었으므로 1905년 12월 2일 오후 5시경에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때 그는 35세의 젊은 나이였다. 김봉학의 자결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보도되어 국민을 감격케 하고 분기케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5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