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평안남도 용강군에도 전파되어 서화면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김두원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만세운동을 접하고 이에 찬성한 김홍세(金弘世)·김치선 등과 함께 신흥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자복리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순사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저항하였으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이 시위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6. 5)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신한민보(新韓民報)(1919. 6. 10)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