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1941년 4월 배재중학교(培材中學校)에 재학하고 있을 때 권오직(權五稷)으로부터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이해직(李海稙)·신철호(申喆浩) 등과 함께 비밀결사 민족주의민족전선(民族主義民族戰線)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실천방안을 모색하여 활동하다가 동년 12월경 종로경찰서에 붙잡혔으나 신흥우(申興雨) 동교 교장의 주선으로 4개월만에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는 1943년 3월 배재중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한 뒤 단파방송을 듣고 독립에 대비하여 청년들을 규합하기로 결심하고 이은우(李殷雨)·박형관(朴炯관) 등과 함께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45년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45년 3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出所確認書(釜山矯導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