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순천(順天)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순천군 신창면(新倉面)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2월 28일 서울에서 귀향한 박창빈(朴昌彬)이 감리교회 목사인 이윤영(李允榮)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되면서 추진되었다. 그들은 의사 함태호를 비롯하여 금융조합 서기 황경환(黃慶煥) 등 3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거사일자를 신창 장날인 3월 5일로 정하였다. 또한 면장 김삼봉은 면사무소에 대한독립운동 준비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게양하였으며, 독립선언서·선전문·동원장 등 10여 종의 격문을 인쇄하여 먼저 일본측에 통고하고 각면에도 배포하였다. 특히 총책임자인 이윤영은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교사이던 아내 이마대(李瑪大)에게 거사 당일의 합창단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3월 5일 오전 10시경, 3,500여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에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그는 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식이 끝난 뒤, 시위군중과 함께 대대적인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이해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39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