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남 중화(中和) 사람이다.
1908년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논설주필로 취임하여 "일인하지(日人何知)" "금일대한국민의 목적지(今日大韓國民의 目的地)" "민족경쟁의 최후승리(民族競爭의 最後勝利)"등의 논설을 1910년까지 집필 게재하면서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 등이 조직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주력하였다.
1910년 오성학교(五星學校) 교감으로 재직하였으며 소위 105인 사건에 연루되자 노령(露領) 신한촌(新韓村)으로 망명하여 권업신문(勸業新聞)에 기고하는 등 계몽활동을 하였고 1917년에는 오산학교(五山學校)의 한국사(韓國史) 교사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를 설립하고 《서울》《학생계(學生界)》《조선지광(朝鮮之光)》 등을 간행하였다. 또 1920년부터 국사연구를 통한 구국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1937년까지 《조선위인전》《조선역사요령(朝鮮歷史要領)》《조선역사대전》《조선사상사》등 30여종의 역사서를 간행하였다.
그는 1922년 조선공제조합(朝鮮共濟組合) 감사,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집행위원, 민립대학설립(民立大學設立)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동아일보(東亞日報)에 66회에 걸쳐 "조선사(朝鮮史)"를 집필 연재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기여하였다.
1940년 일제의 감시를 피하여 평북 영변(寧邊)·평남 상원(祥原) 등으로 은신하며 광복 때까지 저술사업을 주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273·274面
- 東亞日報(1932) 連載記事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113·464·474·488面
- 大韓每日申報(1908∼1910) 論說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495·578面
- 汕耘의 生涯와 思想(汕耘文化財團)
- 朝鮮10大偉人傳(1923. 11. 30)
- 朝鮮歷史要領(1924. 4. 30)
- 朝鮮思想史(1925. 4. 3)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976·988·99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