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5년 1월 경북 달성(達城)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朝鮮國權恢復團 中央總部)를 결성하는데 참여, 활동하였고 1918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회장 박상진(朴尙鎭)에게 권총 10자루의 구입자금 및 여비를 지원하였다. 1919년 초에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서 이시영(李始榮)·박영모(朴永模)·서상일(徐相日)을 노령(露領)지역 독립운동자와의 연락을 위해 파견할 계획을 세우던 중 3·1독립운동이 발발하자 창원(昌原)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김창숙(金昌淑)이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제출할 청원서를 소지하고 중국 상해로 갈 때 여비를 지원하고 일경에 붙잡혀 1919년 9월 29일 고등법원에 이송되어 고초를 겪었다.
1922년 6월 서대문(西大門) 감옥에서 출옥 후 함남 홍원(洪原)에서 덕흥상회(德興商會)를 경영하면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였다고 하며 1927년 9월 일제함흥경찰서에 붙잡혀 검사국에서 고문을 받아 병보석되었다가 1927년 10월 17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83∼18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7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