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4월 평양 (平壤) 에서 조형식 (趙亨植) 노봉규 (盧鳳奎) 김몽진 등 (金濛鎭等) 과 비밀 결사 (秘密結社) “철혈청년단 (鐵血靑年團) ”을 조직 (組織) 하여 임시정부 선포문 (臨時政府宣布文) 각료명단 (閣僚名單) 등을 비롯 철혈청년단보 (鐵血靑年團報) 와 각종 (各種) 비밀 문서 (秘密文書) 를 발간 (發刊) 배포 (配布) 하는등 항일활동 (抗日活動) 을 하던중 1920. 3.13 피체 (被逮) 되어 징역6월을 받은바 있으며 1928. 5. 5 평양 (平壤) 에서 흥사단 운동 (興士團運動) 과 관련 (關聯) 한 동우구락부 조직 (同友俱樂部組織) 에 참가 (參加) 하여 활동중 (活動中) 1940년 피체 (被逮) 되어 다시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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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9년 4월 평양에서 조형식(趙亨植) 등과 비밀결사 철혈청년단(鐵血靑年團)을 조직하여 임시정부선포문(臨時政府宣布文)·각료명단 등을 비롯 〈청년단보(靑年團報)〉와 각종 비밀문서를 발간 배포하다가 일경의 추적을 받아 간도로 넘어가던 중 붙잡혔다.
그는 1920년 3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3년 홍범도(洪範圖) 장군의 간도군관학교(間島軍官學校)에 군자금 모금 및 사관생도 추천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1928년 5월 5일 평양에서 흥사단(興士團) 운동과 관련한 동우구락부(同友俱樂部) 조직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37년 6월 이와 같은 활동 중 일경에 붙잡혀 1939년 12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1940년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을 거쳐 1941년 11월 17일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興士團運動史(1955年, 興士團本部發行) 104∼127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0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174·181·187·19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94·98·104·141面
- 韓國民族運動史料(國會圖書館) 第5卷 21面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612·613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0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58∼82·155∼18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