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대한제국군인 부위 (大韓帝國軍人副尉) 로서 군대해산 (軍隊解散) 을 당 (當) 하자 국권 회복 (國權恢復) 을 목적 (目的) 하여 1912. 3월 만주 (滿洲) 로 망명 (亡命) 한 후 (後) 통화현 (通化縣) 합니하소재 (哈泥河所在)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를 수료 (修了) 한 후 (後) 1919년에는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교관 (敎官) 으로 임명 (任命) 되어 3.1운동후 (運動後) 국권 회복 (國權恢復) 을 목적 (目的) 으로 만주 (滿洲) 로 망명 (亡命) 하여 오는 많은 애국 청년 (愛國靑年) 들을 규합 (糾合) 하여 독립군 (獨立軍) 으로 양성 (養成) 하는데 주력 (注力)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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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의병장 김규식(金圭植)의 장남으로서 1912년 3월 국권회복운동을 펴기 위하여 부친과 함께 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는 중국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소재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수료한 뒤 1919년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로 이전한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어 3·1독립운동 후 이곳으로 망명하여 오는 많은 애국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군으로 양성하는데 이바지하다가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박해로 폐교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독립군단에 편성되어 청산리(靑山里) 독립전쟁에 참전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0輯 28·29·32∼3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179∼181面
- 新興武官學校(元秉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