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원산(元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원산에서 주 익(朱翼)으로부터 주세진(朱世鎭)에게 권총 2정과 실탄 5발을 건네 줄 것을 위탁받고 이 무기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후 윤영주(尹永周)외 1명과 같이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계획하고, 동년 5월 19일 원산의 부호 남상준(南相俊)에게 군자금 천원을 서신으로 요구하였으며, 동월 하순에는 윤영주와 같이 그 집에 남상준의 아우인 남상보(南相輔)에게 군자금을 요구, 백원을 모금하였다.
그후에 서울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서울에 올라와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1919년 5월부터 6월까지 활동하던 중 서울에 거주하는 남관희(南觀熙)에게 군자금 100원을 모연하였으며, 1920년 1월에는 유극선(劉克善)과 함께 서울의 차상건(車相健)에게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실패하고 일경과 총격전 끝에 체포되었다.
그는 1920년 10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공갈·강도미수·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8년형을 받고 1925년 7월까지 서울과 함흥옥을 오가며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2월 11일에는 함남 원산 신간회 조직에 참가하여 이세모(李世模)·전진규(全眞珪)·유재숙(劉在淑)·장기도(張基都)·임경수(任敬洙) 등과 함께 그 실행위원으로서 재만 동포의 권익 옹호를 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0. 9. 14 경성지방법원)
- 판결문(1920. 10. 13 경성복심법원)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630면
- 동아일보(1925. 8. 4, 1927. 12. 1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3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