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함평 (咸平) 에서 활동 (活動) 하고 있는 전수용 (全垂鏞) 의병장 (義兵將) 의 참모 (參謀) 로서 동년 (同年) 7.25일 영광 (靈光) 불암산 전투 (佛岩山戰鬪) 를 비롯하여 해보면 (海保面) 매미재 전투 (戰鬪) 에서 적군 (敵軍) 수십명 (數十名) 을 살상 (殺傷) 케하고 병기 (兵器) 등을 노획 (鹵獲) 하였으며 이어서 나주 (羅州) 대명동 전투 (大明洞戰鬪) 담양 (潭陽) 함평 (咸平) 등지 (地) 에서 많은 전공 (戰功) 을 세우다 1909. 3.27 의병해산 명령 (義兵解散命令) 으로 해진 (解陣) 한 후 (後) 적 (敵)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징역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08년 전남 함평에서 활약하고 있던 전해산(全海山) 의병부대에 들어가 참모가 되어 항일전에 투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같은해 7월 25일의 영광(靈光) 불암산(佛岩山) 전투, 10월 6일의 나주(羅州) 대명동(大明洞)전투, 10월 24일의 담양(潭陽) 대치(大峙)·나주 고막원(古幕院) 전투등에 참가하였으며 이듬해에도 3월 20일에는 영광 오동촌(梧桐村)에서 일군과 항전을 벌였다.
그러나 일군의 압박이 가중되어 전해산이 1909년 3월 27일 의진을 해산하게 되자 그도 이때 항전을 중단하였으나 곧바로 일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 뒤 1910년 3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簿(光州地方法院)
- 湖南節義錄 第3卷 81面
- 寫眞(湖南의 抗日義兵將들 16名中 前例 右端 : 東亞日報, 1986. 3. 1)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421·444·456·494面
- 大韓忠義孝烈錄(上) 368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3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