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1934년 9월 중국으로 망명하여 천진(天津)과 북경(北京)을 거쳐 남경(南京)으로 이동하였다.
이듬해인 1935년 3월 중국 남경 유엽가(柳葉街)에 거주하고 있던 의열단원(義烈團員) 오균(吳均)을 찾아가서 국제정세를 의논하던 중 중일·소일(蘇日)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전쟁이 발발하면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민중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고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동년 4월 1일 중국 남경에 소재한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인 조선혁명간부학교(朝鮮革命幹部學校) 제3기생으로 입교하여 1935년 9월까지 정치학·군사학·교육학 등을 수학하였으며 1934년 6월에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가입하였다.
1935년 10월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수료한 후 중국 남경에 소재한 묘율사원(妙律寺院)에서 민족혁명당원 30여명과 함께 활동하다가 1936년 2월 5일 신병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때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국내에서 민족혁명당원을 모집하라는 지령을 받고 귀국한 후 이를 실행하며 활동하다가 1936년 8월 29일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36년 11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1936년 12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2卷 592面
- 判決文(1936. 12. 22 京城覆審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