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1929년 2월 18일에 충북 충주군(忠州郡) 읍내리(邑內里) 금성여관 주인인 정운자(鄭雲慈)의 집에서 안동규(安東奎)·김학원(金學元)·정진복(鄭鎭福)·서상경(徐相庚)·서정기(徐廷 ) 등과 함께 잡지 문예운동을 간행한다는 목적으로 문예 운동사인 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표면으로는 문예 부흥을 위한 잡지를 발간한다고 하였으나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며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정하였다. 또한 인류는 모두 절대 자유 또는 평등하다는 인류평등원칙에 입각하여 현대의 국가 조직이 이 사실을 위배한다면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식민지 사상에 반기를 들었다. 이 조직은 충주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김현국(金顯國)을 포섭하는 등, 은밀히 세력을 확장하는 듯 했으나 곧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압송된 그는 법정에서 "나는 무정부주의자로서 내가 신봉하는 그 주의는 인류는 모두 절대로 자유 평등할 것을 요하며 따라서 현재의 국가 조직은 그 주의에 배반하는 것"이라고 담대히 외쳤다. 그는 1930년 3월 12일에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2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