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屯南面 獒樹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둔남면 오수리는 임실군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남원군(南原郡)과 인접하여 있으며 군 내에서 제일 먼저 독립만세의 함성이 퍼졌다. 그는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던 중 서울을 위시하여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나자 이기송(李起松)·이만의(李萬儀) 등과 1919년 3월 23일을 거사일로 약정하고 계획을 추진하였다.
3월 23일 오수리 장날 이들은 8백여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벌여 면장과 면서기 등도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고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7. 31 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判決文(1919. 9. 30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04·50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