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전남 (全南) 광주 (光州) 에서 비밀결사인 성진회 (醒進會) 를 지도하였고 전남청년연합회 (全南靑年聯合會) 준비위원 (準備委員) 과 전남청년연맹 (全南靑年聯盟) 집행위원 (執行委員) , 청년동맹 (靑年同盟) 위원 등 (委員等) 으로 활동 (活動) 하다 1928. 4. 21 체포되어 3월간 (月間) 옥고 (獄苦) 를 치른 후 면소 (免訴) 되었으며 오기주 (吳基周) , 임혁근 (林赫根) 등과 고려공산청년회 (高麗共産靑年會) 에 가입하여 김재명 (金在明) 을 책임자 (責任者) 로 하는 광주야체이카에 소속되어 활동 중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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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6·27년 전남청년회연합회(全南靑年會聯合會)와 전남청년연맹(全南靑年聯盟)의 위원으로 청년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1927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광주 야체이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27년 11월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학생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 출신들을 지도하면서 광주 학생운동계를 이끌어 나갔다. 1926년 11월 광주에서 결성된 성진회는 전남지역에서 최초로 조직된 항일학생운동조직이었다. 성진회는 1927년 3월경 형식상 해체했지만, 성진회 출신 학생들은 성진회의 항일정신을 계승하여 각급 학교에서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해갔다. 성진회 출신을 지도하던 강해석은 1928년 4월 광주지역 학생운동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던 이경채(李景采) 항일격문배포에 관련되어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2개월 후 다시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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