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2월 전남 (全南) 창평 (昌平) 에서 거의 (擧義) 한 고광순 의병진 (高光洵義兵陣) 에 참진 (參陣) 하여 남원 (南原) 화순 (和順) 등지 (地) 의 일군 (日軍) 과 전투 (戰鬪) 하다 1907. 9.11 연곡사 (燕谷寺) 전투 (戰鬪) 에서 적탄 (敵彈) 을 맞고 패전 (敗戰) 하여 귀가 치료 (歸家治療) 하다가 의형제 (義兄弟) 로 결의 (結義) 된 황순모 (黃珣模) 가 광양 의병진 (光陽義兵陣) 을 기병 (起兵) 하여 광양지방 (光陽地方) 을 중심 (中心) 으로 활동 (活動) 하다 일군 (日軍) 에게 패전 (敗戰) 하여 은신 (隱身) 하던 중에 황순모 의병장 (黃珣模義兵將) 이 총살 (銃殺) 순국 (殉國) 하였다는 말을 전 (傳) 해듣고 몸으로 그 시체 (屍體) 를 덮어주다가 일군 (日軍) 의 총탄 (銃彈) 에 맞아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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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구례(求禮) 사람이다.
1906년 12월 전남 창평(昌平)의 저산(楮山)에서 고광순(高光洵)이 거의(擧義)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남원(南原)·화순(和順)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9월 11일 구례 연곡사(燕谷寺) 전투에서 어깨에 부상을 입고 구례 간전(艮田)의 자택으로 돌아와 잠시 요양하였다.
그 뒤 1908년 7월 의형제를 맺은 황순모(黃珣模)와 그의 당질(堂姪) 황병학(黃炳學)이 광양(光陽)에서 거의하자 여기에 참가하여 광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일군에게 패하여 민가에 은신하였다.
그러나 1909년 10월 11일 함께 은신중이던 황순모가 일군에게 피살될 때 "내 그와 사생(死生)을 같이하자고 맹세했는데 나만 빠져나와 산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하고 은신처에서 뛰쳐나와 함께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우리고장의 歷史(鄕土學習資料集 第1卷, 1974. 5. 30) 7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輯 441面
- 내고장 傳統가꾸기(求禮郡, 1981. 12. 1) 31·35∼3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