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6월 평양 (平壤) 진위대 (鎭衛隊) 가 해산 당 (解散當) 하자 청풍 (淸風) 으로 가서 조동돈 (趙東敦) 방필성 (方必成) 박덕준 (朴德峻) 등 해산 군인 (解散軍人) 과 함께 거의 (擧義) 하여 의병장 (義兵將) 으로 추대 (推戴) 되어 제천 (堤川) 에서 일군 (日軍) 과 조우 (遭遇) 하여 교전 (交戰) 끝에 대승 (大勝) 하고 원주진위대 (原州鎭衛隊) 참위 (參尉) 이며 해산 군인 (解散軍人) 인 양재원 (梁在遠) 과 합세 (合勢) 하여 인제 (麟蹄) 에서 적 (敵) 을 공격 (攻擊) 하고 군청 (郡廳) 주재소 (駐在所) 우편소 (郵便所) 등을 습격 (襲擊) 하면서 친일 일진회원 (親日一進會員) 을 응징 (膺懲) 하며 활동 (活動) 하다가 전사 순국 (戰死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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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북 제천(堤川) 사람이다.
1907년 8월 평양진위대(平壤鎭衛隊)가 해산당한 후 청풍(淸風)으로 내려와 조동교(趙東敎)·황대성(黃大成)·조동규(趙東奎)·방필성(方必成)·박덕준(朴德峻)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15일 휘하 의병 약 35명과 함께 말안(末安) 중위가 이끄는 일군과 제천에서 조우, 4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였고 또 야간 포위공격을 가하여 이들을 끝내 충주(忠州)로 퇴각시켰다. 다음날 일군이 다시 내습해 온다는 정보를 듣고 험지에 복병을 두면서 약한 저항을 하여 영월(寧越)로 퇴각하는 형세를 보여 일군을 유인하였다. 이어 이날 밤에 일군이 민가에 유숙하고 있음을 알고 의병들과 같이 이들을 기습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또한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참위(參尉) 양재원(梁在遠)과 합세, 인제(麟蹄)를 공격하여 군청과 주재소(駐在所)·우편소(郵便所)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응징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08년 10월 13일 충주 하달천(下達川)에서 일군과 교전하던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朴殷植全書 上卷 553面
- 忠州朴氏世譜(1954, 10月 發行)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48·49·52·67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44面
- 堤川郡誌(堤川郡 , 1969年) 281·282·300·320·32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481·533·57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