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128
성명
한자 陳信愛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19. 3.10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敎師)재직중(在職中) 박애순(朴愛順)과 같이 기숙 중(寄宿中)여학생(女學生)들에게 독립 정신(獨立精神)고취(鼓吹)시켜 수피아여학생(須彼亞女學生)들을 이끌고 광주(光州)장터로 나아가서 독립만세’(獨立萬歲)고창(高唱)하며 활동(活動)하다가 일경(日警)에게 피체(被逮)되어 징역10월을 받았으나 미결기간(未決期間)합산(合算)하여 11월20일간의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광양(光陽)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光州郡 孝泉面 楊林里)에 거주하면서 수피아(須彼亞)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이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미 2·8독립선언서가 광주지방의 청년들에게 전달되었으며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장(國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던 김철(金鐵)과 서울 유학생 최정두(崔正斗) 등이 1919년 3월 5일 광주로 돌아오면서부터 곧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고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는 3월 10일 박애순(朴愛順) 교사와 함께 기숙중인 여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였으며 수피아여학생들을 이끌고 광주장터로 나아가서 모여든 시위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는 이처럼 선두에 서서 학생들을 지휘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30 光州地方法院)
  • 光州市史 第2卷 28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5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89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진신애 - 전라남도 광양(光陽) 3.1운동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0월 광주지방법원 1919-04-30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서울현충원(위패)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장소 수피아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2 동상 광주 3.1만세운동 기념 동상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3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4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진신애(관리번호:6128)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