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4월 대한민국군정서 총사령부 (大韓民國軍政署總司令部) 수금위원 (收金委員) 김태규 (金泰珪) , 서정은 (徐廷殷) 에게 군자금 (軍資金) 6천원 (六仟圓) 을 납부하고 일제에 탄로되어 피신한 바 있으며 1931. 5월 만주 (滿洲) 에서 한국독립군 총사령 (韓國獨立軍總司令) 황학수 (黃學秀) 와 연락하며 일군 (日軍) 에 대한 정보 (情報) 와 군자금 (軍資金) 을 수시 (隨時) 로 제공 (提供) 하는 등 활동 (活動) 하였고 1945. 4월 국내외 (國內外) 독립운동 (獨立運動) 정보 연락 (情報連絡) 및 군자금 조달 (軍資金調達) 등을 위해 귀국 (歸國) 하였다가 일제 (日帝) 에 체포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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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군(日軍) : 일제 군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북 괴산(槐山) 사람이다.
1920년대 이래 군자금 모집과 일본군 정보를 제공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황상현은 3·1운동 이후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던 중 1920년 4월 대한민국 군정서총사령부(大韓民國 軍政署總司令部)에서 파견된 수금위원(收金委員) 김태규(金泰珪)·서정은(徐廷殷) 등과 만나 뜻을 같이하고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황상현은 군자금 6,000원을 김태규 등에게 납부하였다가, 이 사실이 일경에 탐지됨으로써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후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1931년 한국독립군총사령부(韓國獨立軍總司令部) 황학수(黃學秀)와 연락하며 일본군에 대한 정보와 군자금을 수시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1945년 3월 경 국내동지들과 열강의 여론상황, 국내외 독립투쟁사항 정보, 군자금조달 등의 연락차 잠시 귀국하였다가 같은 해 4월 1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후 같은 해 8월 광복이 되면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軍資金 領收證(大韓民國軍政署總司令部, 1920. 4. 20)
- 書信(具昌會, 1920. 5. 20)
- 書信(柳桂成, 1945. 5. 15)
- 地圖 後面 記載事項(1931. 5. 2)
- 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同 編纂委員會) 下卷 1069·1070面
- 日記(子 황극원의 日記)
- 獨立軍資金 領收證(193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