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음 (陰) ).12.20 서울에서 김홍제 (金鴻濟) 와 함께 진위 (振威) (지금의 평택 (平澤) )의 오인영 (吳麟泳) 을 만나 독립군자금 (獨立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여 중국 (中國) 상해 (上海) 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원 (大韓民國臨時政府員) 이 되어 독립운동 (獨立運動) 에 헌신 (獻身) 할 것을 협의 (協議) 하고 서로사령총부 (西路司令總部) 의 인장 (印章) 을 조각 (彫刻) 하고 군자금 영수증 (軍資金領收證) 을 작성 (作成) 하여 수원 (水原) 안성 (安城) 진위 (振威) 등지 (地) 에서 독립운동 군자금 (獨立運動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려고 하던중 피체 (被逮) 되어 징역3년을 받았으며 1928. 5월 상해 (上海) 로 가서 임시정부 (臨時政府) 에서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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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20년 음력 12월 20일경 김홍제(金鴻濟)·오인영(吳麟泳)과 함께 독립군자금을 모집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완구용 권총 한자루를 구입한 다음 중국 동삼성(東三省) 소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명의의 인장을 조각하여 군자금 영수증서를 작성하고 수원(水原)·안성(安城)·진위(振威) 등지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오인영을 방문하러 가던 중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1년 5월 5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및 강도예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동년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8년 5월 중국 상해로 도항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총장인 친형 조용은(趙鏞殷)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1. 6. 6 京城覆審法院)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 警務局) 21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1053∼105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