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8 만주 (滿洲) 에서 김동삼 (金東三) 이청천 (李靑天) 등과 독립운동 (獨立運動)
2. 1919삼일운동 시 (三一運動時) 탑동공원 (塔洞公園) 에서 만세 호창 (萬歲呼唱)
도만 (渡滿) 하여 서로군정서 설립 (西路軍政署設立) 에 참여 (參與) , 비밀 특파원 (秘密特派員) 으로 국내 출입 (國內出入) 하다 피체 (被逮) 되어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에서 4개월간 (個月間) 구류 (拘留)
3. 1919대구 (大邱) 에서 한인관리퇴직권고문 (韓人官吏退職勸告文) 를 작성 (作成) 하여 각 관공서 (各官公署) 에 영포 (領布) 탄로 (綻露) 되어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에서 3년 (年) 복역 (服役)
4. 1923출감 후 (出監後) 교육 사업 (敎育事業) 기독교 사업 (基督敎事業) 사회 사업 (社會事業) 에 종사 (從事)
판결문 (判決文) 확인서 (確認書) 입증서 (立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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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9
3. 1919
4. 1923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1918년 만주(滿洲)에서 김동삼(金東三)·이청천(李靑天)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1919년 3·1독립운동 때에는 탑골공원(塔洞公園)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후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결성에 힘썼으며, 서로군정서의 비밀특파원이 되어 국내에 출입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1월 황종화(黃鍾和)·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등과 함께 서울 권농동(勸農洞) 남효원(南孝元)의 집에서 수차례 회합을 가진 후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원 강태동(姜泰東)으로부터 독립문서를 교부받았다. 그후 그는 대구(大邱)로 내려가 최익무(崔益武)에게 그 문서를 교부하고 대구 일대에 배포케 했다. 독립문서 배부가 일경에 의해 발각되자 곧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268·26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39·24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42∼2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65·4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466∼14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