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06년 3월 정용기(鄭鏞基)가 경북 영천(永川)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할 때 그 휘하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7년 7월 입암(立岩)전투에서 일군에 패하여 의병장 정용기를 비롯해 중군장·참모장·좌영장 등 의진의 핵심들이 일시에 전사해 의진이 해체되자 은둔하였다.
그 뒤 1927년 산남의진에 참가한 거의제공(擧義諸公)의 충절을 기리고자 참동계(參同 )를 만들고 서문(序文)을 작성, 배포하다가 붙잡혔으나 기소 중지로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35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輯 404·406面
- 山南倡義誌(下) 80面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檢察廳 慶州支廳 :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