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6년 종형이 되는 김기선(金基善)과 함께 중국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 반납배(半拉背)로 이주하여 1918년 동지인 조용석(趙庸錫) 등과 같이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하는데 참가하였고, 1920년 10월경까지 이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청소년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1919년 3월 봉천선 유하현(柳河縣)에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여 백가장(百家長)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에는 봉천성 환인현(桓仁縣)에 본부를 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행정부 실업과(行政部 實業課)의 주임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1934년부터 1945년 8월에 이르는 기간동안 길림성(吉林省) 이통현(伊通縣)에서 수전조합장(水田組合長)을 지냈으며 신광보통학교(新光普通學校)를 설립하여 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였고, 조국이 광복된 후에는 장춘(長春)에서 한국거류민단의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16·426·48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100∼107·40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