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탑동공원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국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송춘근은 1919년 2월 경, 세브란스의전(醫專) 3학년 재학 중 3·1운동 학생대표 연희전문학교생 김원벽(金元璧)·보성전문학교생 강기덕(姜基悳) 등의 연락을 받고 학생동원의 책임을 맡기로 하였다. 그는 동료학생들에게 3월 1일 정오까지 태극기와 적색 리본을 가지고 탑동공원으로 집합하도록 하고 그날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한편, 그는 세브란스의전 스코필드의 도움을 받아, 일제의 한국인 학살만행을 촬영한 사진을 미국선교회와 신문사에 보내기도 하였다.
같은 해 8월, 그는 남감리교 전도사인 김조길(金祚吉)로부터 상해에서 발행되는 '국민신문(國民新聞)'·'독립신문(獨立新聞)' 등을 춘천에 거주하는 기독교도와 유력자들에게 배포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 27일 미국 남감리파의 전도특파원(傳道特派員)이 춘천에 오는 것을 기회로, 춘천교구에 속한 남감리파 교도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단행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선언서(宣言書)' 2개·축하가(祝賀歌)·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 등 인쇄물을 만들어 춘천지역에 비밀리에 배포하던 중 일경에 발각되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20년 10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4輯 490面
- 프로필(宋春根 自筆 프로필, 作成年代 未詳)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468∼472面
- 해남신문(1995. 2. 24)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241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1920. 10. 8. 京城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