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남 안주(安州) 사람이다.
안주면 건인리(建仁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김찬성(金燦星) 목사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궐기한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서울과 같은 날에 거사하기로 결심하여 그를 비롯한 김화식(金化湜)·박의홍(朴義弘)·전성걸(全聖杰) 등 교회 간부급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선언서를 등사 복제케 하고 교인들을 선도하여 독립선포식에 참가하도록 조처하였다.
김찬성의 지시를 받은 그는 이날 하오 5시 읍내 서문(西門)밖에 모여든 교인과 주민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면서 연설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주동자 색출에 혈안이 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1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의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항고하였으나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1년 9월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김찬성 등과 연락하여 비밀결사를 조직, 군자금 조달책과 연락책으로 활동하다가 일헌병에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1922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7년 4월 형만기로 출옥한 뒤에는 고문휴유증으로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3·1運動實錄(李龍洛) 899·900面
- 每日申報(1919. 4. 10)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7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423·424面
- 判決文(1919. 6. 5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831∼83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