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박용근은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06년 의병장 안병찬(安炳瓚)이 결성한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가하여 홍주읍에서 일본군 헌병대의 공격을 받아 안병찬,박창로(朴昌魯)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안병찬과 박창로는 1896년 1월 17일(음 1895. 12. 3) 김복한(金福漢)을 추대하여 홍주의진을 결성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안병찬과 박창로 등은 1906년 봄 군사를 일으켜 합천(合川)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1906년 2월 23일 안병찬,박창로 등 40여 인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다가 4월 12일 방면되었다. 그 후 안병찬은 홍주를 거점으로 창의를 모색하여 4월 16일 민종식(閔宗植)을 창의장으로 추대하고 박창로,안항식(安恒植),신복균(申復均) 등과 함께 참모(參謀)가 되었다. 이른바 홍주의진이었다. 약 만명으로 구성된 홍주의진은 1906년 4월 26일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4월 9일 일본군의 포위 공격으로 성은 함락되고 82명이 사망하고 145명이 체포되는 큰 피해를 입었고, 그 중 80명이 경성으로 압송되었다.
박용근은 안병찬의 문인이었다. 1906년 홍주의진에 참가하여 홍주읍에서 일본군 헌병대의 공격을 받아 안병찬,박창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347~3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293~2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