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26년 6월 완도군 소안면(所安面)에서 송내호(宋乃浩)·강정태(姜正泰) 등과 함께 「합리적 신사회 건설」을 표방하는 비밀결사 살자회(會)를 결성하고, 농민·노동·청년·여성운동 등 각 부문별 운동에 관한 방침을 협의 결정하였다.
이 무렵 일제 당국은 소안도(所安島) 주민 및 청년단체들의 사상 성향을 매우 불온시하여, 일찍이 1923년 5월에 소안도 주민 800명의 의연금 1만 4백 원으로 신축 설립된 사립 중화학교(中和學校)를 독립군과 사회주의자 양성기관이란 명목으로 자진 폐쇄토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927년 5월에 강제 폐교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강압적 조치에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일경은 그 동안 소안면의 노농운동과 청년운동을 이끌어 온 지도급 인물들을 1927년 10월경부터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른 12명의 동지와 함께 붙잡혀 목포형무소에 구금되어 있다가 폐질환으로 1929년 2월에 보석(保釋) 출감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출감 6개월 만인 그 해 8월 27일에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3. 31 대구복심법원)
- 제적등본
- 한국논단(1991. 8월호) 160·161면
- 동아일보(1929. 2. 18)
- 조선일보(1928. 10. 25, 1929. 2. 1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099∼11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