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아들 어경선(魚敬善)과 함께 1896년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끈 제천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화서학파의 학문적 특징인 춘추대의적 존화양이 사상에 철저히 경도되어 있었던 인물이다. 그리하여 의병활동 중에 남긴 글에서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성재 유중교 세 분 선생님의 문하들이 일생을 통해 강설(講說)한 것은 서학을 배척하고 왜적에 대해 복수하는 것 뿐이다. (중략) 나라를 사랑하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의거에 누가 창의(倡義)하지 않으며, 원수를 갚고 형세를 보존하는 일에 누가 거사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일을 차마 어찌 말로 다하랴. 일을 하는데 우리는 죽지 않으면 그만이고, 죽는다 해도 대의를 펴서 천하를 구하기 위해 죽으니 죽을 명분을 찾은 것이다”라고 하여 강렬한 항일투쟁 의지를 드러내었다. 그 후 유인석이 휘하 의병을 이끌고 황해도·평안도 등 양서지방을 거쳐 재기를 위해 서간도로 망명할 때 아들 어경선과 함께 동행하여 갖은 고초를 겪었다. 서간도에서 돌아온 직후인 1898년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堤川郡誌(1969) 306면
- 毅菴集(柳麟錫, 1973) 上冊 481면
- 昭義新編(1981) 469·471·478면
- 畏堂先生三世錄(柳弘錫, 1983)
- 心齋公魚允奭 親筆寫本
- 剛窩集 祭魚誠中敬善文
- 韓末의 堤川義兵(具玩會, 집문당, 1997) 5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