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2년에는 통의부 제5중대 제1소대 참사(參士)로 봉천성(奉天省) 개원(開原)에서 중·일 양경(兩警)과 교전하던 중 양완관통상(兩腕貫通傷)을 입고 체포되어 수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5년에는 길림(吉林)에서 조직된 정의부에 가입하여 해원(海原) 지방 총관소검무원(總管所檢務員)으로 활동하였고, 1927년에는 북만에서 양기탁(梁起鐸)과 같이 동흥학교(東興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힘썼다. 1928년에는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에 가입하였으며, 1929년에는 고려혁명군 결사대에 참가하여 동지 최기호(崔基浩)·손성우(孫聖于)·김태부(金泰富) 등과 함께 하얼빈(哈爾濱)에서 활동중 일경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미결로 3년동안 수감되었다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5면
- 동아일보(1930. 3. 27, 1932. 4. 29, 5. 5,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