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19년 초 만주(滿洲)에서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송병준(宋秉畯)·조중응(趙重應)·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윤덕영(尹德永)·이병무(李秉武) 등을 처단하기 위해서 27결사대(決死隊)가 조직되어 1919년 3월 3일 광무항제(光武皇帝)의 국장일(國葬日)을 거사날로 정하고 2월 하순경 서울로 잠입하였다. 이때 그는 이러한 27결사대의 목적에 적극 찬동하여 이기원(李基原)·조규수(趙圭洙)·양종환(梁鍾煥)·노윤선(盧胤善) 등과 함께 가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1919년 3월 3일로 예정되었던 매국노들을 처단하려는 계획은 권총과 탄환의 입수가 늦어지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다. 이 탁(李鐸)의 준비하기로 되어 있던 무기는 3월 15일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전해졌고, 3월 20일 경에는 성토문과 경고문 등을 독립문과 종각(鐘閣)에 부착하는 등 국민들에 대한 자신들의 결의를 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매국노들을 주살하기도 전에 5월 5일 일경에 붙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붙잡힌 대원들은 그를 비롯하여 주병웅(朱秉雄)·차병제(車秉濟)·이기원(李基原)·손창준(孫昌俊) 외 몇 명이 더 있었다.
그는 1921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8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출감하였다. 이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1월 4일 천진(天津)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14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5면
- 동아일보(1921. 3. 4, 3. 12, 1926. 5. 26)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