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8월 황재호 의병장 (黃在浩義兵將) 의 부하 (部下) 가 되어 의병 (義兵) 20여명 (餘名) 이 총검 (銃劍) 으로 무장 (武裝) 하여 양주군 (楊州郡) 「웃산야워」부락 (部落) 등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軍資金募集活動) 을 하였으며 1907. 9월에는 이재학 (李在學) 의병장 (義兵將) 휘하 (麾下) 의병 (義兵) 30여명 (餘名) 이 총검 (銃劍) 으로 무장 (武裝) 하여 적성군 (積城郡) 삭령군 (朔寧郡) 등지 (地) 에서 친일 (親日) 일진회원 (一進會員) 김영덕 (金永德) 이강녕 (李姜寧) 등을 색출 (索出) 하여 주살 (誅殺) 하는등 활동 (活動) 하다가 체포되어 교형 (絞刑) 을 받아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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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살(誅殺) : 죄를 물어 죽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1907년 8월 양주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황재호(黃在浩) 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동료 의병 20여명과 함께 양주군 '웃사야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이재학(李在學) 의병장의 휘하로 옮겨가 30여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적성(積城)·삭녕(朔寧)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같은 달 9일에는 삭녕군 남면리(南面里)에 살던 일진회원(一進會員) 김영덕(金永德)과 이강년(李姜寧) 등을 주살 단죄하고 붙잡혔다. 그 뒤 1909년 12월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고살(故殺)죄 등으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1910년 1월 15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기각됨으로써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0. 1. 15 京城控訴院)
- 梅泉野錄(國史編纂委員會) 421·51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132∼13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