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경원(慶源) 사람이다.
1916년 20세 전후에 만주로 건너가 중국 관청에 근무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하여 황병길(黃炳吉)·최경천(崔慶天)·최희순(崔熙順)·정성규(鄭成奎)·백규세(白圭世) 등과 함께 혼춘(琿春)에서 의용군(혹은 急進團)을 조직하여 무장 항일활동을 하였으며 1920년 1월에는 경원군 용당(慶源郡 龍堂) 등지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1920년 6월 22일에는 군무부(軍務部)의 취체와 군사탐정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헌병대를 신설하고 헌병을 선발하여 훈련시켰는데 그는 헌병사령관으로서 군무부 중대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1921년 2월에는 혼춘현 춘화향 남별리(琿春縣春化鄕南別里)를 근거로 하여 최경천·윤낙세(尹洛世)·한경서(韓京瑞) 등과 함께 120여명의 무장독립군을 거느리고 선전문 배포, 일제 밀정처단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동년 2월에는 혼춘현 6도구(六道溝)지방에 은신하고 있던 중, 일제의 압력을 받은 중국 관헌이 귀순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일시 노령방면으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왔으나, 1921년 5월 14일 토문자(土門子) 북쪽에서 중국관헌에게 체포되어 국자가(局子街)로 압송되었다. 이에 일제의 압력에 따라 소요죄로 금고 1년형을 받았으나, 중국측의 협조로 3개월만에 석방되었다.
출옥 후에도 무장항일활동을 계속하다가 1925년에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925년 8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9년 4월에 출옥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서 활동하다가 혼춘지방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127·336·339·362·372·407·41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