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김창숙(金昌淑)의 사장(査丈)인 그는 1926년 김창숙이 독립군기지 건설과 군사 양성을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운동을 전개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북경(北京) 등지에서 활동하던 김창숙은 1926년 1월 중국으로부터 밀입국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김창숙 등은 내몽고(內蒙古) 지방의 미간지와 황무지 20만 정보를 매입하여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즉 만주 지역의 한인들을 집결시켜 개간사업을 일으키고, 그 수익금으로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여 군대를 양성하는 둔병식(屯兵式)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10년 동안의 실력양성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그런데 이 때 김창숙이 교통사고로 부상당하자 그는 아들 손후익(孫厚翼)과 함께 김창숙을 보호하면서 정성껏 간호하는 한편 경주 지방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한 군자금 모집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1927년 2월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7. 2. 11)
- 국역심산유고(국역심산유고간행위원회, 1979) 477·478면
- 벽옹김창숙일대기(심산사업회) 183·184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86면
- 신문조서 86·8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312면
- 예심종결결정서(1927. 1. 21 대구지방법원)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3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