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0년대부터 주시경(周時經) 등과 함께 한글 연구 및 조선광문회(朝鮮廣文會)의 말모이 사전 편찬에 참여했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쳤다.
1921년 12월 3일 ‘조선말’과 ‘조선글’을 연구하기 위한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한 이래 전국 각지를 돌며 조선어강습회(朝鮮語講習會) 강사로 활동했다. 1923년 7월 23~29일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에서 주최한 조선어강습회에서 전국의 교사 200명을 대상으로 ‘조선어학사(朝鮮語學史)’와 ‘고어(古語)의 연구’ 등을 가르쳤다.
1927년 2월 한글사(社)를 조직하고 잡지 『한글』을 발행하였다. 1929년 11월 한글 창제 483년을 맞아 유진태(俞鎭泰) 등 180여 명의 유지들과 함께 조선어사전편찬을 발기하고 조선어사전편찬회(조선어사전편회)를 창립했다.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주최로 1932년 12월 27일부터 1933년 1월 4일까지 개성(開城)의 고려청년회관(高麗靑年會館)에서 개최된 철자통일위원회(綴字統一委員會)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여기서 그 동안 조선어학계에서 문제시되어온 한글 철자법의 통일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1933년 7월 26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화계사(華溪寺)에서 열린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철자법 통일을 위한 토의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 회의는 지난 번 결정된 원안에 대해 6개월 동안 수정 보충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정리하여 일반에 공포하기 위한 회의였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200여 차례의 논의과정을 거친 후 1933년 10월 한글기념일을 기하여 발표했다. 한글의 통일과 함께 보통학교 교과서나 각 신문사의 활자도 고치게 되었는데, 이를 지식층과 일반에 보급하기 위해 같은 해 11월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서 1개월 동안 조선어 강좌를 방송 강의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한 공표 이후 조선어학회에서는 제2단계 사업으로 조선말 표준어 제정작업에 들어갔다. 1935년 1월 2~5일 1년여 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표준어사정위원회(標準語査定委員會)를 열고 이를 심의했다. 논의의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에 이독회(二讀會)를 열어 재차 수정과 보충을 거쳤다. 이렇게 결정된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제정 작업은 사전 편찬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 조선어사전편찬회의 편찬 전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수가 구속될 당시 지병이 심각하여 불구속 심문을 받았다.
1920년대 이래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1923), 『조선유기(朝鮮留記)』(1924), 『조선유기(중)』(1926), 『조선유기략(朝鮮留記略)』(1929) 등 한글과 역사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고 한글과 역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저서들은 일제강점기 내내 중등학교의 교재와 참고서로 두루 활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 7. 2, 1921. 12. 3, 1922. 4. 1, 4. 23, 7. 16, 11. 27, 1923. 1. 25, 8. 5, 1925. 4. 24, 9. 1, 1926. 1. 9, 10. 31, 12. 17, 1927. 2. 21, 6. 15, 7. 15, 11. 8, 1928. 3. 29, 6. 22, 7. 22, 11. 15, 1929. 1. 9, 1. 26, 7. 28, 8. 15, 11. 2, 1930. 9. 5, 11. 22, 1931. 7. 10, 7. 25, 7. 28, 1932. 7. 30, 8. 4, 8. 11, 11. 2, 12. 24, 1933. 1. 6, 1. 13, 7. 26, 8. 4, 10. 21, 11. 7, 1934. 7. 29, 12. 30, 1935. 8.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8권 968~970, 1010~1012면
- 사진 :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