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 독립운동 (獨立運動) 당시 중국 (中國) 동삼성 (東三省) 장백현 (長白懸) 18도구 (道溝) 에서 항일활동 (抗日活動) 을 하고 동년 (同年) 10월 독립지단 (獨立支團) 에 백원 (百圓) 의 군자금 (軍資金) 을 헌납하였으며 1919.11월 장백현 (長白懸) 17도구 (道溝) 에서 대한독립군비단 (大韓獨立軍備團) 장백현지단 (長白懸支團) 을 조직하여 국내진공작전 (國內進攻作戰) 을 계획하였고 1921. 6월에는 동삼성 (東三省) 무송현 (撫松懸) 18도구 (道溝) 에 근거를 둔 흥업단 (興業團) 제1지부 (支部) 경호부장 (警護部長) 으로 30여명의 경호원 (警護員) 을 인솔하며 독립운동 (獨立運動) 을 하는등 3년간 (年間) 에 걸친 활동 (活動)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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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일찍이 중국 동북성으로 망명하여 장백현(長白縣)에 소재한 협신학교(協新學校)를 졸업한 후, 1906년부터 1907년까지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한인자제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이 간도지역으로 파급될 때, 이창운(李昌雲)·유일우(劉一優)·김병윤(金秉潤) 등과 함께 동포들을 결속시켜 4월 10일 장백현 18도구(道溝)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어 1919년 10월 장백현에서 유일우(劉一優)를 단장으로 독립지단(獨立支團)을 설치하고 군자금 1만원(圓) 모집 계획을 세울 때, 일백원(圓)의 군자금을 헌납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동지들을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장백현 17도구에서 이한평(李漢平)·김동준(金東俊)·김 찬(金燦) 등과 함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장백현지단(長白縣支團)을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며 항일활동을 벌였다.
그 뒤 1921년 6월에는 무송현(撫松縣) 18도구 명천덕리(明川德里)에서 대종교(大倧敎) 인물들을 중심으로 흥업단(興業團)이 조직되자, 제1지부의 경호부장(警護部長)으로 피임되어 30여명의 경호원을 인솔하며 한인사회의 질서 유지와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32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63·787·10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3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