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대전(大田) 사람이다.
1925년 11월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귀국한 김창숙(金昌淑)을 도와 자신의 집에 은신하도록 하여 동지들과 접선기회를 제공하였다.
당시 김창숙은 파리장서 사건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몽고(內蒙古) 지방의 미간지와 황무지 20만 정보를 매입하여 이상촌(理想村)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즉 만주지역 한인들을 집결시켜 개간사업을 일으키고, 그 수익금으로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여 군대를 양성하는 둔병식(屯兵式)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10년 동안의 실력양성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김창숙은 이러한 계획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25년 8월 국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송영우(宋永祐) 등과 협의하여, 경상남북도 등지에 있는 김창숙의 친척·고우(故友)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때 이원태는 1925년 11월 2일 대전(大田)에서 김창숙을 처음 만났다. 그는 김창숙으로부터 군자금 모집계획을 듣고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는 같은 달 3일부터 12일까지 자기 집에서 김창숙을 머물게 하였다. 그후 유성 온천의 평양여관으로 김창숙을 안내하여 그곳 동지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년 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27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399·419面
- 判決文(1927. 3. 29. 大邱地方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309·311·322·323·331·332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286面
- 騎驢隨筆(宋相燾) 258·261∼264面
- 翁金昌淑一代記(心山事業會) 180·201面
- 東亞日報(1927. 2. 4, 2. 11, 2. 14, 3. 19, 3. 3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